힙합을 이루는 악기들 - 비트를 만드는 도구들
재즈나 록과 달리, 힙합의 '악기'는 조금 특별해요. 대부분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라 비트를 만드는 도구거든요. 남의 음악을 잘라 붙이고(샘플링), 기계로 드럼을 찍고, 턴테이블을 악기처럼 다루는 것 - 그게 힙합의 연주법입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얹히면 힙합이 완성돼요. 각 도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 눌러 확인해 보세요.
비트를 만드는 도구
힙합 사운드의 뼈대. 이 네 가지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시대와 지역의 색깔이 갈립니다.
턴테이블 (Turntables)
힙합이 태어난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첫 악기'. DJ가 레코드판(LP)을 손으로 밀고 당겨 '치지직-' 소리를 내는 스크래치, 두 판을 오가며 같은 구간을 반복시키는 기술로, 턴테이블을 연주 악기로 바꿔놓았어요.
드럼 머신 - 롤랜드 TR-808
힙합 드럼 소리의 대명사. 1980년대 롤랜드가 만든 이 기계의 묵직하게 울리는 킥(둥-)과 째지는 하이햇은 오늘날 힙합·트랩 비트의 표준이 됐어요. "808"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저음 킥을 뜻할 정도죠.
샘플러 - AKAI MPC
옛 소울·재즈 레코드의 한 조각을 잘라내(샘플링) 패드를 두드려 새 비트로 재조립하는 기계. J Dilla, 칸예 웨스트 같은 프로듀서들의 손끝에서 힙합의 황금기를 만든 심장이에요. 그 원조 격으로 거친 질감의 SP-1200도 빼놓을 수 없죠.
신디사이저 (Synthesizer)
전자음을 만들어내는 건반 악기. 서부 힙합의 나른한 '지펑크' 리드 멜로디, 트랩의 어둡고 웅장한 저음까지 - 샘플 없이 처음부터 소리를 빚어낼 때 신디사이저가 등장합니다.
왜 하필 이 도구들이었나
위 네 가지는 누군가 "힙합용으로" 만든 물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값이 싸서, 혹은 이미 집에 있어서 악기가 됐어요.
- 턴테이블은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 1970년대 브롱크스에서 악기와 레슨은 비쌌지만, 부모 세대의 레코드와 재생기는 집에 있었습니다. 가진 것으로 시작한 겁니다.
- TR-808은 실패작이었습니다. 1980년에 나온 이 드럼머신은 "진짜 드럼 같지 않다"는 이유로 혹평받고 3년 만에 단종됐어요. 그래서 중고 가격이 바닥을 쳤고, 장비 살 돈이 없던 프로듀서들이 그걸 샀습니다. 지금 힙합 드럼의 표준이 된 소리는 팔리지 않아서 싸진 기계의 소리입니다.
- 샘플러는 메모리가 모자랐습니다. 1987년의 SP-1200은 샘플을 통틀어 10초 남짓밖에 담지 못했어요. 그래서 프로듀서들은 곡을 통째로 쓰는 대신 아주 짧게 잘라 반복해야 했고, 그 제약이 그대로 힙합의 문법이 됐습니다. 짧은 루프와 거친 질감은 미학이기 이전에 용량 문제였어요.
기술이 장르를 만든다는 말은 대개 과장이지만, 힙합에서는 꽤 정확합니다. 도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그대로 스타일이 됐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나
다행히 이 네 가지를 다 사 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드럼 패턴을 격자에 찍고, 신스로 소리를 직접 빚는 일을 브라우저에서 바로 해볼 수 있어요. 808의 킥이 왜 그렇게 길게 울리는지는 엔벨로프의 릴리즈를 늘려보면 3초 만에 알게 됩니다.
드럼 패턴을 격자에 직접 찍어보기 - Rhythm Lab→
그 위에 얹는 것
아무리 좋은 비트도, 마지막 한 조각이 없으면 힙합이 아니에요.
마이크 - 목소리라는 악기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사실 사람의 목소리예요. 랩은 단순히 말을 빠르게 하는 게 아니라, 박자를 타고(플로우) 라임을 쌓아 목소리를 리듬 악기처럼 다루는 일이죠. 같은 비트라도 누가 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이 됩니다.
도구를 알고 나면, 좋아하는 곡에서 "이 소리는 808이구나", "여긴 샘플이네" 하고 들리기 시작해요. 이 도구들이 어떻게 40년의 문화를 만들었는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재즈 악기 편성도 이렇게 정리해 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