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과 샘플링 - 남의 소리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
1948년 파리, 한 라디오 방송국 엔지니어가 기차역에 녹음기를 들고 갔어요. 증기기관차의 칙칙거림, 기적, 바퀴가 레일을 때리는 소리를 잔뜩 녹음해 와서는, 그 테이프를 자르고 붙이고 거꾸로 돌려 곡을 만들었습니다. 악기는 한 대도 쓰지 않았어요.
피에르 셰페르의 〈철도 연습곡〉입니다. 지금 들으면 낯설지만, 이 4분짜리 소음 콜라주가 오늘날 힙합·EDM·K팝이 전부 딛고 서 있는 한 가지 발상의 출발점이에요. 소리는 녹음되는 순간 재료가 된다는 발상 말이죠.
샘플이 뭔가요
샘플(sample)은 녹음된 소리 조각이에요. 스네어 한 방, 기타 한 마디, 옛날 소울 레코드에서 떼어 온 네 마디짜리 드럼 구간, 문 닫히는 소리 - 길이도 출처도 상관없어요. 녹음돼서 파일이 된 소리면 전부 샘플입니다.
그리고 샘플링(sampling)은 그 조각을 악기처럼 다루는 기법이에요. 건반에 얹어 음정을 바꾸고, 곡의 템포에 맞게 늘이고, 잘라 재배열하는 것 전부요.
실제 작업에서는 보통 이렇게 나눠 부릅니다.
- 원샷(one-shot) - 한 번 울리고 끝나는 짧은 소리. 킥, 스네어, 클랩, 심벌. 드럼 패턴을 직접 찍을 때 쓰는 재료예요.
- 루프(loop) - 이어 붙이면 계속 도는 마디 단위 구간. 드럼 루프, 기타 루프처럼요. 편하지만 템포와 키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 브레이크(break) - 옛 펑크·소울 곡에서 다른 악기가 다 빠지고 드럼만 남는 구간. 힙합이 태어난 재료가 바로 이겁니다.
기계가 따라잡기까지
셰페르가 가위와 테이프로 했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1963년 멜로트론은 건반 하나하나에 테이프를 물려놨어요. 건반을 누르면 그 테이프가 재생되는 방식이죠. 비틀즈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그 플루트 소리가 멜로트론입니다. 진짜 플루트를 녹음한 테이프를 건반으로 튼 거예요.
1979년 페어라이트 CMI가 이걸 디지털로 바꿉니다. 마이크로 아무 소리나 녹음해서 건반 전체에 펼쳐 연주할 수 있는, 최초의 상용 디지털 샘플링 악기였어요. 가격은 집 한 채 값이었고, 그래서 초기엔 스티비 원더, 피터 가브리엘, 허비 행콕 같은 사람들만 만질 수 있었죠.
허비 행콕이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와 아이들에게 샘플링을 설명하는 1983년 영상이에요. 아이들 목소리를 녹음해서 건반으로 연주해 보이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샘플링이 뭔지 이보다 잘 설명한 3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1988년 아카이 MPC60. 로저 린이 설계한 이 상자는 패드 16개와 시퀀서를 한 몸에 넣어서, 샘플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비트를 짜는 방식을 표준으로 만들었어요. 오늘날 거의 모든 DAW의 드럼 화면이 이 배치를 물려받았습니다.
6초가 장르를 만들 때
기술 이야기는 여기까지. 진짜 이야기는 어떤 소리가 선택됐느냐에 있어요.
1969년, 워싱턴의 소울 밴드 The Winstons가 〈Amen, Brother〉라는 곡을 냈어요. B면 수록곡이었고, 거의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곡 중간에 드러머 G. C. 코울먼이 혼자 치는 6초짜리 구간이 있어요.
그 6초가 지금까지 수천 곡에 들어갔습니다. 정글, 드럼앤베이스, 브레이크코어는 사실상 이 6초를 빠르게 돌리고 잘라 붙이면서 생겨난 장르예요. N.W.A도, 오아시스도, 심지어 영국 TV 광고 음악도 이걸 썼습니다. 이름은 아멘 브레이크.
정작 The Winstons는 이 샘플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밴드 리더 리처드 스펜서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자기 곡이 얼마나 널리 쓰였는지 알게 됐고, 2015년에야 영국 DJ 두 명이 모금을 해서 전달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제임스 브라운의 〈Funky Drummer〉(1970)에서 클라이드 스터블필드가 친 20초 남짓한 구간이요. 퍼블릭 에너미부터 LL 쿨 J까지 천 곡 넘게 이걸 썼는데, 스터블필드 역시 거의 받은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정에 갔습니다
초기 힙합은 남의 레코드를 허락 없이 가져다 쓰는 문화였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안에는 그게 통했습니다. 그러다 세 번의 판결이 판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1991년, Grand Upright Music v. Warner Bros. 비즈 마키가 길버트 오설리번의 곡을 허락 없이 샘플링했다가 소송을 당했고, 판사는 판결문을 성경 구절 "도둑질하지 말라"로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샘플은 미리 허락을 받는 것이 됐어요. 클리어런스라고 부릅니다.
2005년, Bridgeport Music v. Dimension Films. 미국 제6순회항소법원은 더 나아가 "라이선스를 받든가, 샘플하지 말든가"라고 못 박았어요. 2초짜리 기타 코드 한 덩어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었죠.
2016년, VMG Salsoul v. Ciccone. 마돈나 곡의 0.23초짜리 혼 샘플을 두고 제9순회항소법원은 정반대로 판단했어요. 너무 짧아서 문제가 안 된다고요.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도 어느 법원이냐에 따라 답이 다릅니다.
정리하면 이래요. 기존 곡을 샘플링하려면 저작권 두 겹을 다 통과해야 합니다.
- 작곡 - 멜로디와 화성. 작곡가와 음악 출판사가 가지고 있어요.
- 마스터(음원) - 그 실제 녹음물. 보통 음반사가 가지고 있고요.
둘 중 하나만 받아도 소용이 없어요. 유명한 곡일수록 협상은 몇 달씩 걸리고, 선급금에 로열티 지분까지 요구받습니다. 취미로 곡 만드는 사람에게는 사실상 닫힌 문이에요.
로열티 프리 샘플팩이 존재하는 이유가 정확히 이겁니다. 처음부터 "이 소리를 당신 곡에 써도 좋다"고 정리해서 파는 것. 두 겹을 미리 치워준 상태로 받는 거예요.
소리를 다루는 손기술
샘플을 구했다면, 그냥 얹는 게 아니라 손을 봅니다. 자주 쓰는 것들만 추려보면.
- 찹(chop) - 한 구간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패드에 하나씩 배치하고, 다시 두드려 새 순서로 연주하는 것. J 딜라와 칸예 웨스트가 이걸로 유명해졌어요.
- 타임 스트레치 - 음정은 그대로 두고 길이만 늘이거나 줄여 곡 템포에 맞추는 것.
- 피치 시프트 - 반대로 음정만 바꾸는 것. 예전엔 재생 속도를 바꾸면 음정과 길이가 같이 움직였는데(그래서 나온 게 칩멍크 보컬), 지금은 따로 조절할 수 있어요.
- 리버스 - 거꾸로 돌리기. 심벌을 뒤집으면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나서 마디 전환에 자주 씁니다.
- 필터링 - 저역만 남기거나 고역만 남기기. 원곡 티를 지우고 질감만 가져올 때 써요.
- 레이어링 - 여러 샘플을 겹치기. 킥 하나로 부족하면 저음이 좋은 킥과 어택이 또렷한 킥을 포개는 식이에요.
그래서, 지금 샘플은 어디서 구하나
여기서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저작권이 확실히 없는 소리를 무료로 구하려면 CC0를 찾으세요.
"무료 샘플"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위험해요. 대부분은 "내 음악에 써도 된다"는 뜻이지 "재배포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어떤 것은 크레딧 표기가 의무이며,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알고 보면 상업 팩에서 뜯어온 경우도 있습니다.
CC0(Creative Commons Zero)는 저작자가 권리를 전부 포기해 사실상 퍼블릭 도메인이 된 자료예요. 상업적으로 써도 되고, 고쳐 써도 되고, 출처 표기 의무조차 없습니다. 쓸 만한 곳은 이런 데가 있어요.
- VCSL(Versilian Community Sample Library) - 실제 악기를 녹음한 방대한 CC0 라이브러리. 드럼 킷을 채울 소리가 다 있습니다.
- FreePats - 오래된 프로젝트지만 어쿠스틱 드럼과 각종 퍼커션이 정리돼 있어요.
- Freesound - 검색할 때 라이선스를 CC0로 걸면 안전한 것만 남습니다. 품질 편차는 크지만 특이한 소리를 찾을 때 좋아요.
우리가 그 길을 직접 갔습니다
이건 남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사이트의 리듬 랩에서 지금 들리는 드럼 소리 열 개가 전부 CC0입니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번 실패했어요.
처음엔 어쿠스틱 킷으로 가려고 VCSL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CC0 어쿠스틱 라이브러리에는 드럼 킷의 킥이 아예 없어요. 있는 건 오케스트라용 대형 북뿐인데, 10초 넘게 울리는 거대하고 느린 소리라 그대로는 절대 킥으로 못 씁니다. 앞뒤를 0.5초로 잘라내고, 저역의 웅웅거림을 걷어내고, 60Hz대의 펀치를 올리고, 3kHz대의 딸깍임을 끌어올려 봤어요. 반나절이 갔고, 결과는 여전히 교향악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1994년에 마이클 피셔가 실기에서 딴 롤랜드 TR-808 샘플셋이에요. CC0로 공개돼 있고, 이 글에서 이야기한 샘플링 역사에 그대로 얹히는 물건입니다 — 샘플러가 대중화되던 그 시절에 누군가 드럼머신 하나를 통째로 떠서 공유했고, 30년이 지나 우리가 그걸 씁니다. 어택도 훨씬 빨라요. 오케스트라 북은 소리의 정점이 11밀리초 뒤에 왔는데, 808의 킥은 3.7밀리초입니다. 그 차이가 "박자가 안 맞는 느낌"의 절반이었어요.
하이햇은 더 까다로웠어요. 실제 하이햇은 심벌 두 장이라 오픈이 울리는 도중 클로즈드를 치면 그 자리에서 소리가 멎어야 하는데, 원샷 두 개를 그냥 겹쳐 재생하면 두 소리가 동시에 울려 완전히 틀린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재생 엔진에 초크 규칙을 따로 넣었어요.
여기서 얻은 결론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CC0만으로 좋은 드럼 킷을 꾸릴 수 있어요. 다만 공짜인 것은 돈이지 시간이 아닙니다.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 알고도 반나절을 버렸고, 결국 원하던 어쿠스틱 킷은 CC0 세상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킷으로 갈아탄 뒤에야 끝났으니까요.
기차 소리에서 시작해 법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네요. 샘플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다음은 실제로 곡을 만들 때 그 소리를 어떻게 구하느냐입니다. 반나절을 들여 직접 다듬는 길도 있고, 이미 다듬어진 수백만 개 중에서 고르는 길도 있어요.
→ Splice, 왜 쓰고 어떻게 쓰나 - 샘플 구독이 실제로 사 주는 것
비트를 만드는 도구들 자체가 궁금하다면 이쪽도 있어요.